관광지

“기완 초호의 생가터, 맨션 앞”

역사

“류큐 처분 직전의 산시칸(三司官, 관직)으로, 와카(和歌, 일본 고유 형식의 시)로도 저명했던 기완 초호(宜湾朝保)의 생가터.”

기본 정보

주소
903-0811 오키나와현 나하시 슈리아카히라초 1-4-1 부근 아카히라 맨션 앞
영업 시간
특별히 없음
휴일
특별히 없음
가격
무료
주차
없음
가장 가까운 역
"모노레일 기보역에서 하차, 도보 7~8분"

부수 정보

학술 정보
"류큐 처분 직전의 산시칸(三司官, 관직)으로, 와카(和歌, 일본 고유 형식의 시)로도 저명했던 기완 초호(宜湾朝保)의 생가터.
기완은 1823년 슈리에서 태어났다. 생가 기완 가문은 쇼씨(尚氏) 오로쿠우둔의 분가로, 기노완 마기리의 소지토(総地頭, 영주) 가문이기도 했다. 산시칸(三司官, 관직)을 두 명이나 배출한 명문 집안이다. 기완은 오모테15닌(表十五人)의 관직을 역임하였고, 1862년 산시칸에 임명되었다. 1868년 메이지 정부가 수립되었고, 1871년에는 이신케이가시(維新慶賀使, 메이지유신 경축 사절)의 부사가 되어 상경. 쇼타이(尚泰)를 류큐번왕(琉球藩王)으로 한다는 명을 받고 기쁘게 귀국했다.
1875년 류큐 처분이 구체화되기 시작하자, 기완 등 이신케이가시의 책임이라는 세상의 비난을 받았다. 동년 산시칸을 사직, 다음 해 실의에 빠진 채 54세의 생애를 마감했다. 기완은 왕조 시대를 대표하는 와카 시인으로, 후에 궁중 가도 어용괘(宮中歌道御用掛)가 된 사츠마번 무사 핫타 도모노리(八田知紀)에게 사사하였다. 와카집 『오키나와집(沖縄集)』, 『오키나와집(沖縄集) 2편』을 편집한 것 외에 시가집으로 『쇼후집(松風集)』이 있다. 그리고 기완 가문의 이름은 쇼타이(尚泰)의 차남 쇼인(尚寅)이 1860년에 기노완 마기리를 다스리는 기노완 왕자라 칭했기 때문에, 같은 이름을 피해 개명한 것이다."